조습 - 풍자와 조롱의 정치학

2000년대 초반부터 조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잠복해 있는 야만과 폭력의 문제에 천착하여 그 앞에서 좌초되어 가는 개인의 인격, 인간의 권리, 사회적 정의와 같은 가치의 회복 가능성을 힘들게 탐색해 나가고 있다.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유효한 것이겠지만 조습의 탐색은 그 가치가 자기 시대, 즉 작가 개인에게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해 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예컨대 군사 독재라는 제도적 폭력을 그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을 터이나 그것이 보편적 폭력이라면 학교나 길거리와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체험하는 폭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타인이나 집단 혹은 하나의 사회가 개인에게 저지르는 야만과 폭력은 시대를 달리하여 변형된 형태로 개인을 무력화시키지만 저변에 깔려 있는 본성은 같은 것이다. 모든 야만적 폭력은 과거로 퇴적되어 가면서 집단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간다. 역사가 되어 버린 폭력은 폭력성이 제거된 것이지만 그것을 낳았던 제도와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폭력은 계속해서 순환된다. 이처럼 역사가 된 폭력의 현재적 의미를 반추해 보고 폭력의 순환을 들추어내는 것이 조습의 작업을 이끌어 나가는 내적 추동력이라 하겠다.

일상 속의 야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온 수많은 제도적 폭력과 근원적인 사회 문제들에서 비롯된 개인이나 집단의 야만성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작가가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일상의 폭력이다. 강도나 파급력이 약하더라도 개인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작은 폭력은 본질적으로 거대한 폭력 못지않게 야만적이다. 폭력에 대한 무관심이나 방관은 그것에 대한 호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부터 시작한 《무제》 연작은 비근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폭력을 다루고 있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출발하여 끔찍한 유혈 사태를 초래하고야 마는 상황을 보여 주는 이 연작들에서 작가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이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약한지, 그 전염성이 얼마나 강한지,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폭력 앞에서 얼마나 쉽게 폭력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를 반문해 보고 있다. 총 9점으로 구성된 “무제 01” 연작은 거리의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던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한 사람을 폭력의 제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술을 마시던 이들이 점차 술에 취하고, 결국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머리를 빈 맥주병으로 내리치는 모습, 무슨 영문인지 몰라 사태를 주시하던 다른 이들이 이내 폭력의 공범자가 되어 가는 모습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혈 사태가 어째서 발생했는가는 이 작업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무제 02-04” 의 경우, 예컨대 “무제 03” 에 등장하는 폭력도 그렇다. 한강변에 놀러와 음주 가무를 즐기던 청년들이 갑자기 등장한 두 여인과 즐겁게 놀다가 한 남자에게 집단 폭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명확한 이유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어쩌면 집단 폭력이 발생하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왜'가 아니라 한번 발생한 폭력은 갈 데까지 간다는 것이고, 그 폭력은 전염되듯 주변 사람들을 적신다는 것이다. 폭력의 원 주체가 있고 이를 따라하는 후발 주체가 있다. 후발 주체들의 폭력은 원 주체에 대한 모방에서 온다. 르네 지라르식으로 표현하자면 폭력은 모방된다. 폭력의 제물은 왜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당한다. “무제 01” 에서의 희생자는 분노를 삭이려고 홀로 남아 맥주를 마시고, “무제 03” 에서의 제물은 모두가 떠난 자리에 혼자 남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한다. 그것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무제 02” 는 폭력의 문제를 약간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두 친구는 처음에 서로를 반기다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고 한 친구가 구타를 당하여 길거리에 쓰러진다. 거리를 지나던 행인을 붙잡고 도움을 청하던 희생자는 오히려 운동화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더욱 가혹한 구타를 당한다. 동행이던 여자는 각목을 들고 난타를 하는 남자의 행태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고, 구타를 마치고 제 갈 길을 가던 남자는 분이 삭지 않았는지 다시 돌아와 마지막 발길질을 가한다. 이 연작에서 행인이 폭력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에는 까닭이 있다. 길거리에 쓰러진 남성이 도움을 청하는 과정에서 그의 운동화를 더럽힌 것이다. 요컨대 그의 폭력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정당한가는 다른 문제에 속한다. 나의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침해를 당했을 때 타인의 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의 희생자 앞에서 우리가 취하는 일반적인 태도가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연작에 등장하는 이들, 처음에는 폭력의 방관자였다가 이내 모방적 폭력의 공범이 되는 이들은 폭력의 희생자 앞에서는 둔감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에는 민감한 초라한 개인들의 상징이자 우리의 자화상이다.

재현된 역사와 탈 신화

폭력에 대한 둔한 인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작가는 한국 현대사를 거쳐 간 갖은 폭력의 상징들을 패러디한다. 그것은 역사적 폭력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의 의미를 함께 지니며, 폭력의 순환을 비꼬고 풍자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도적 폭력을 비판하는 기능을 한다. 그의 패러디는 시의성을 띠고 있어 역사가 된 폭력이 현재적 시점에서 어떻게 뒤틀리고 변형되어 나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각되어 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습이를 살려내라” 가 대표적인 예이다. 1987년 6.10항쟁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의 죽음을 패러디한 이 사진의 무대는 시청 앞이다. 동료의 부축을 받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젊은 청년은 ‘Be The Reds'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색 셔츠를 입었다. 쓰러지는 인물과 그를 부축한 또 다른 인물의 자세와 복장은 원래의 이한열과 흡사하나 장소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청 앞으로 바뀌었으며, 상의 또한 그렇다. 어째서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셔츠를 입은 청년이 시청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지 인과관계를 따져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작가는 월드컵 당시 시청 앞에 모여든 초유의 인파와 6.10항쟁 때 같은 장소에 운집했던 인파를 비교하고 싶었을 것이다. 15년 전의 시청 앞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인파가 몰렸던 장소이나 2002년의 시청 앞은 축구 경기를 응원하기 위한 장소였다. 모두가 자기를 망각한 채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던 이 장소에서 작가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1987년에 이곳에 모여들었던 이들은 누구나 이 청년의 죽음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그 때문에 왔었다. 그러나 15년 후에 이곳에 몰려든 이들은 그의 죽음을 아예 모르거나, 혹은 잊어버렸거나, 혹은 더 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머리에 붉은 물감을 묻힌 채 부축을 받고 있는 붉은 악마의 모습은 비극성을 상실해 버린 코믹한 현실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조습의 패러디는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어설프고 유치한 모습으로 등장시켜 희극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묻지마》 연작이 그 예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와 “마를린 먼로” 가 보여 주는 조야한 스타일과 유치한 포즈는 인천상륙작전을 이끌어 낸 전쟁 영웅과 세기의 섹스 심벌에 덧씌워진 신화를 걷어 내는 효과를 갖는다. 몇 명의 보좌관과 맨발로 한강을 건너는 초라한 군인의 모습에서 영웅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고, 일개 사병의 품에 안겨 희희낙락하는 볼품없는 여성이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미군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 그 여신이라고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조야함과 유치함, 어설픈 모방 뒤에 감춰진 전략에는 탈신화화라는 노림이 있는 셈이다.

작가는 이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패러디를 우리의 현실 문화에 대한 비판의 거울로 삼는다. “4.19” 는 거리에서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청년의 모습을 코믹하게 연출하여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무고한 시민에 대한 부도덕한 공권력의 탄압에 대한 풍자로도 읽힐 수 있고, 4.19 당시의 실제 상황에 대한 코믹한 재현으로 읽힐 수도 있다. “5.16” 의 경우 메시지는 좀 더 구체적이다. 다양한 종류의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가무를 즐기는 모습을 연출해 낸 이 작업은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군사 문화와 권위주의의 흔적을 들추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크를 쥔 장교는 노래방이라는 유흥 공간에서조차 부동자세로 서 있고 사병들 또한 그 옆에 엄숙한 자세로 도열해 있다. 여흥이 무르익자 그들은 흐트러진 자세로 가무에 빠져들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부동자세로 서서 군인의 태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5.16이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 군사 문화의 흔적을 깊이 새겨 놓았다는 뜻일까.

이러한 해석은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묻지마 》 연작을 구성하고 있는 패러디의 대상 목록과 방법을 살펴보면 정작 작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역사적 사건들은 현실 저편으로 물러나 버린 사소한 과거처럼 보인다. “10.26” 이나 “광주” 가 보여 주듯 이 사건들은 “김득구” 나 “임춘애” 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옛일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사건과 사소한 사건이 어디 따로 있단 말인가. 그래서 작가는 무게감 있는 역사적 사건조차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틀어 재현해 낸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패러디가 갖는 풍자적 힘은 이중적이다. 우선 역사를 희극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큰 사건과 작은 사건의 차이를 희석시켜 버리는 효과가 있다. “광주” 에서 피를 흘리며 벽에 기댄 청년이나 “김득구” 에서 링에 쓰러져 있는 김득구의 모습, “물고문” 에서 고문을 당하는 남자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두가 폭력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같다. 비장함으로 가득해야 마땅할 이러한 장면들이 코믹하게 보인다고 해서 작가의 패러디가 역사의 탈신비화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패러디는 그간 역사를 다루어 온 기존 예술의 엄숙주의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와 작가가 패러디를 통해 새롭게 제시하는 ‘재현된 역사'의 사이에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유사 이미지가 갖는 주술적 마력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그 차이를 간파함으로 해서 반성적 성찰의 계기가 마련된다. 역사를 그럴 듯하게, 엄숙하게 재현해 내는 예술은 차분한 반성적 사유보다는 설득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말려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삼류 코미디처럼 유치한 패러디의 진정한 힘이자 전략이라 하겠다.

끔찍한 과거

《악몽》 연작에서 작가는 이제 한국 사회를 갈등과 혼란의 국면으로 몰고 간 각종 사회 문제들을 다룬다. 여기에는 인질극과 유괴 사건 등의 범죄를 비롯하여 농성과 분신으로 표출된 시국 사건, 교통사고와 같은 우발적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각종 사건들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역사적 무게감에는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작가 개인에게, 나아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개인들에게 이 사건들은 중립적인 의미에서 우선 폭력에 대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들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 뇌리에 각인된 사건들은 잊히더라도 언젠가 다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악몽이다. “인질” 이나 “유괴” 는 한동안 사회 문제가 되어 세간을 들끓게 했던 인질극과 유괴 사건에 대한 패러디로, 《묻지마》 에서의 패러디를 덮고 있던 유치함 대신 사실적 재현을 방법론으로 취하고 있다. 코믹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웃음이 재현과 실재 사이의 거리를 간파하는 데서 온다면, ‘악몽'이 유발하는 공포는 재현과 실재의 혼동에서 온다. 요컨대 인질극과 유괴 사건의 재현이 실제 현실에 가까워 보일 때 웃음은 사라진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진지함과 엄숙함이 짙게 배어 있는 다른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옥상” 이나 “밍크이불” 이 보여 주는 상황은 사건이 지닌 무게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10.26” 이나 “광주” 의 코믹함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작가 본인에게 이러한 각종 사건들은 본질적으로 끔찍하고 두려운 경험이다. 그것은 세계관이나 역사의식과 무관하게 주어진다. 예컨대 휴가 나온 사병으로 분한 작가가 당구를 치다가 상대에게 멱살을 잡힌 채 굴욕을 당하는 상황, 이 또한 악몽이다. 그것은 조직 폭력배에게 끌려가 발가벗겨진 채로 무릎을 꿇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뒤에서 야구방망이를 든 사내가 언제 무자비하게 뒤통수를 내리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나 멱살 잡은 사내의 주먹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두려움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악몽은 물리적 폭력이나 강요, 협박과 같은 구체적 현실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봉투” 가 암시하는 티켓 다방에서의 상황 또한 작가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곤혹스런 현실이다. 여기서 느끼는 모욕감은 마치 “지하실” 에서 나신으로 앉아 여성 형사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 모습은 자장면을 배달해 온 다른 남성에게 고스란히 목격되고 있어 수치심을 증폭시킨다.

두려운 믿음

두려움이 구체적 현실에서 발생하는 폭력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 집단적 광기이다. 그것의 근원은 종교에 가까운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생각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때 갈등이 시작되고 그것을 강요할 때 폭력이 싹튼다. 이제 작가는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에서 차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굳건한 (집단적) 믿음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이 되는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방법론은 여전히 카라바지오나 루벤스와 같은 고전 예술에 대한 패러디를 따르고 있다. 이 연작에 속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편지의 형태를 취한 “I Love S” 에서 믿음에 대한 회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S'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다음과 같이 쓴다. “마치 태어날 때 세례를 받아 과학 시간 수업 때 다윈의 진화론을 절대 믿지 않는 이들처럼 이 나라 사람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종교와 같은 것 같아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이 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해도 논리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니까요. (…) 만약 뜻이 다른 이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다가 마음속의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할 때면 심하게 분노하는 모습이 참 의아했죠.”

믿음이나 신념은 한번 자리 잡으면 쉽게 깨지지 않는다. 설명과 논리가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 믿음은 그래서 종교에 가깝다. 작가는 이러한 믿음의 문제를 두 측면에서 다룬다. 우선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1” 과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13” 은 나신의 젊은이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는 예수의 자태로 등장시켜 고귀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1” 에 등장하는 젊은이는 이념을 믿음과 등가의 가치로 받아들였던 이데올로그들의 상징이다. 작가에게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학생 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은 그 자체로 성자와 닮았다.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그들의 희생은 예수의 희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믿음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는 사람들은 상처 투성이여서 희생된 젊은이와 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왔음을 암시한다. 그들의 믿음이 의탁했던 진리는 형광등, 즉 빛으로 상징되고 있으나 그 빛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노동자는 진리를 갈아 끼우고 있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13” 에서 희생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젊은이는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1” 과는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이데올로그들의 상징이다. 교복과 교련복, 군복을 입은 채 희생자를 떠받치고 있는 그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믿음을 가졌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봉했던 믿음, 혹은 교육을 통해 뇌리에 새겨진 믿음 또한 갱신을 요구하고 있다.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의 또 다른 연작들에서 작가는 과학과 믿음의 혼동, 혹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종교를 다룬다. 이 연작은 생명 복제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4” 는 수술대 위에 누워 피부를 이식받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치 생체 실험을 하듯 외과의사는 수술 도구를 그의 팔에 들이대고 있으며, 군복 차림의 남자들이 그의 팔다리를 붙잡고 있다. 왼편에는 또 다른 의사들이 실험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고, 중앙에는 성직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서 있다. 이 기이한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차리기란 어렵다. 다만 이 실험을 주관하는 이들과 여기에 참관한 이들이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험 대상인 남자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그저 과학이라는 이름의 종교 앞에서 희생되어 갈 뿐이다. 과학이 생명을 영속화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종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믿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는 허구적이다. 아직 채 현실이 아닌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정한 공포는 오히려 현실 자체에 있다. 허구적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한 허구적 믿음이 이 공포를 만들어 낸다. 요컨대 현실은 우리를 끊임없이 죽음에 가까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2” 와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05” 가 보여 주듯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목덜미에 칼을 겨눈다. 이러한 잔혹한 상황에서도 관능적인 자태의 여인은 죽음을 목전에 둔 남자의 공포에 무관심하며 (02) , 목을 칼날 앞에 내놓은 남자의 위급함에 모두가 초연하다. (05) 나아가 어떤 이는 타인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08) 흡혈 인간이기조차 하다.

블랙 코미디

최근작 《컨테이너》 에서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는 계속된다. 그 풍자는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컨테이너는 현 정부가 국민의 저항권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상징이 된 것이기도 하고, 생존권 쟁취를 위한 각 집단들에게 항거의 장소였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컨테이너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촛불” 은 촛불을 든 사람들을 피라미드 구도로 구성하여 촛불 집회를 뜻 깊은 기념비적 사건으로 제시한다. 인간 기념탑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삼각 구조물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은 학생과 주부, 직장인, 노동자, 갓 제대한 군인,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복장 또한 정장에서부터 작업복, 평상복, 우비, 붉은 악마 티셔츠 등으로 가지각색이며, 꼭대기에 위치한 작가는 상의를 탈의한 상태이다. 바로 이 다양성이 기념비적 사건의 보편성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따봉” 은 최근의 쌍용 자동차 사태를 염두에 둔 풍자로 블랙 코미디적인 성격을 갖는다. 두 명의 노동자가 크레인을 사용하여 곡예를 펼치는 장면을 보여 주는 이 작업에서 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 사람은 자기 발목을 크레인에 묶어 거꾸로 매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TV 광고에 등장했던 ‘따봉'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무엇이 멋지고 무엇이 최고라는 뜻일까. 크레인의 꼭대기에 올라가 끝까지 생존권 수호를 위해 싸웠던 동료들에 대한 찬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일까. 어쨌든 이 기묘한 곡예를 보면서 키치적 찬사를 보내는 노동자의 모습은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린 동료 노동자의 모습 못지않게 기이하다.

한편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가 갖는 비정상적인 측면은 부동산 문제와 관련하여 극명히 드러난다. 익명의 ‘S'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작가는 결혼을 앞둔 남자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드는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제집 마련이 어려워진 젊은이들이 결국 그 때문에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큰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지옥 같더라고요”라는 고백은 다시 “제 욕심이 커진다면 언젠가 저도 당신을 그들이 싸웠던 컨테이너 박스로 올려 보낼 수 있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이어진다. 도시 재개발 사업도 결국 같은 문제에 속한다. “함진애비” 는 최근의 용산 참사에 대한 패러디로, 도시 재개발 사업에서 비롯된 공권력의 야만적 폭력과 그것이 야기한 무고한 희생을 형상화하고 있다. 오징어 가면을 쓴 남자들은 주검이 된 남자를 안은 채 예식을 준비하고 있다. 용산의 희생자들은 재개발에 필요한 제물이었던 것이다.

조습의 패러디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과 사회 현상에 대해 매우 기민하게 대응한다. 날렵한 인식과 민첩한 반응 덕분에 그의 작업은 역동성을 확보한다. 요컨대 그는 현실을 부지런히 읽어 내고 작업을 통해 되새김질한다. 그 되새김질은 다시 현실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이어진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의 틀 속에서 진행되어 온 많은 다른 작업이 무겁고 진지한 엄숙주의의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에 비해 조습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유치하고 어설퍼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볍고 코믹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웃음을 유발하는 엄숙함이 있는 것이다. 쓴웃음 짓게 만드는 풍자, 그것이 조습의 작업이 지닌 정치적 의미이다.

글 박평종

* 이 글은 2010년 월간 PHOTONET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